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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폴리의 다이어리: 에르메스의 로버트 차베스
에르메스 미국 지사 CEO가 자신의 생각을 공유했다
2021-01-04Bridget Foley

▲에르메스 미국 CEO 로버트 차베스. / George Chinsee/WWD 

 

‘계획’은 과대평가될 수 있다. 적어도 전 세계 럭셔리의 정점에 있는 브랜드 ‘에르메스’의 미국 지사를 이끄는 CEO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는 바로 로버트 차베스(Robert Chavez)다. “나는 커리어에 대한 계획이 있던 적이 없다. 그저 내 삶이 이끄는 곳으로 갔을 뿐”이라고 말한다. 

 

20년 전, 삶은 그를 현재의 위치인 에르메스 미국 지사 CEO로 안내했다. 그로부터 그는 좋은 시기이던 나쁜 시기이던 모든 상황을 극복하며 회사를 이끌어왔다. 그는 캐나다를 제외한 미주 지역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감독했으며, 2018년 미국 내 수익은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더불어 로버트는 911 사태의 여차, 2008-2009년의 금융위기, 그리고 현재의 팬데믹 등 문화적 격동과 절망의 시기를 헤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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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아메리카(Hermès Americas)는 에르메스 전체 매출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팬데믹 강타 전 그들의 매출은 12% 증가한 12억 유로를 기록했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 첫 9개월은 6억 6백5십만 유로로 29% 감소했다. 하지만 3분기에는 미주 지역 매출이 5.2% 감소하며 그 수가 크게 개선되었다. 

 

20년 넘게 우여곡절을 거듭한 로버트는 변함없는 자신감과 대담함, 그리고 겸손함으로 회사를 리드했으나 정작 자기PR에는 관심이 없다. 반면 그는 감사 표현에 굉장히 신경 쓴다. 로버트는 에르메스 인터내셔널(Hermès International)의 전설적인 CEO 장 루이 뒤마(Jean-Louis Dumas)와, 블루밍데일(Bloomingdale’s) 내 크리니크(Clinique) 카운터 매니저 도라(Dora)에게 배운 교훈을 동등한 존경심을 가지고 회상한다. 그는 주로 에르메스 아메리카를 위해 일하는 수백 명의 사람에게 찬사를 보낸다. 

 

로버트는 “나는 CEO이지만 CEO가 아니다. 나는 팀원이며 일부”라고 말한다. 이것은 경영인들 사이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고 특별하진 않으나, 그가 얼마나 직원들을 돌아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모습으로 인해 그의 말은 힘이 있고 신뢰를 준다. 특히 소매 부문의 직원들에 대해 “그들은 매일 최전방에 나가 고객을 상대하며, 물건을 관리하고 배송한다. 과거 블루밍데일 경험으로 그 일이 뭘 필요로 하는지 잘 안다”고 말한다. 

 

로버트는 그 덕분에 럭셔리 업계 경험이 부족했음에도 에르메스에서의 자리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그에 더해 멋진 아르마니 슈트와 에르메스의 5대손 장 뒤마와의 유대감도 한몫했지만 말이다. 이제 로버트는 2014년 CEO로 임명된 장 루이의 조카 ‘악셀 뒤마(Axel Dumas)’에게 보고하고 있다. 

 

악셀은 “내수 시장 전략은 에르메스 사업 모델의 핵심”이라고 말하며 이 전략이 강한 현지 리더십을 요한다고 전했다. “로버트는 에르메스가 지역 감성을 유지하며 역동적인 성장과 확장에 대한 브랜드의 의지 강화로, 미국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던 원동력이다. 그는 에르메스의 가치와 품질, 우수성, 가족 정신과 공예에 대한 열정을 더욱 키워준다”고 덧붙였다. 

 

가족은 에르메스의 정신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개념이다.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에 의해 설립된 이 회사는 6대째 경영 일선에 나서고, 에르메스 가문이 대주주로 남아 있다. 로버트는 에르메스 가문의 일원이 아니며, 텍사스 샌안토니오 출신의 라틴 아메리칸이다. 그도 자신을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 가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한 장기근속자에 따르면 로버트는 그들을 진정한 가족처럼 대한다고 한다. 로버트가 회사에 합류하기 몇 년 전부터 있던 수잔 다이스코(Susan Dicecco),는 현재 매디슨 애비뉴(Madison Avenue) 매장 고객 서비스 매니저로 서로의 이름을 부를만큼 친밀하다. 수잔은 로버트가 처음 회사에 합류한 후 매장에 방문해 모든 직원에게 자신을 소개한 것을 기억하며, 그가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한다고 말했다. 또 로버트는 직원들의 이메일에 즉시 회신한다. 수잔은 그가 직원 개개인을 알고자 노력하며 회사에 가족 같은 느낌을 가져다줬다고 말한다. 에르메스 파리가 그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뉴욕은 그렇지 않았었고, 로버트가 그 분위기를 만든것이다. 

 


▲2019년 5월, 에르메스 아메리카의 직원 전체. / Samantha Nandez/Courtesy of Hermès

 

12월, 로버트는 보통 토요일마다 영업 사원들과 함께 매디슨 애비뉴 및 남성복 매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여성복 매장에서는 주로 스카프 카운터에 있다. 수잔은 그에게 매출 목표를 맡기며, 로버트는 이를 성취하는 것에 굉장한 경쟁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힘든 일이며 로버트는 자신이 영업 파트에게 고마워 한다는 것을 확실히 전달한다. “그들이 어떻게 이 힘든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난 겨우 하루만 해도 발이 아파 죽겠는데, 그들은 매일 같이 한다”고 말했다. 

 

‘타운 앤 컨트리(Town & Country)’의 편집장 스텔린 볼란데스(Stellene Volandes)는 로버트를 약 15년간 알고 지냈으며, 그가 12월의 토요일마다 하는 일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직원들을 지지하거나 쇼핑객의 패턴을 조사하고, 또는 고객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갔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거기에 있었고, 여전히 젠틀한 판매직의 모습으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프로토콜은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 로버트를 매장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 상황은 그가 직원들과 연결되게 하는 것까진 막지 못했다. 뉴욕에 락다운이 임박했을 때, 그의 첫 번째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연락을 유지할까?”와 “모든 사람이 집에 고립되면 서로 어떻게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였다. 그는 모든 지사 직원에게 매주 이메일 업데이트를 하기로 결정, 이는 급작스럽게 집에 갇힌 직원들 사이에서 호응이 좋았다. 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들고 달라스와 휴스턴을 시작으로 매장이 재개할 준비를 하자, 로버트는 실패와 함께 이룬 성공담을 나누었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건들뿐 아니라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건에 대한 사회 정의 등에 비춘 회사의 향후 계획을 전했다. 


로버트는 “난 어떤 것도 꾸며서 말하지 않는 편이고, 숨기는것도 없다. 내가 있는 그대로 말했기에 사람들이 좋아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상황이 안정되기 시작하며 로버트가 주간 이메일을 더는 보내지 않자, 직원들은 오히려 꾸준한 그 연락이 그립다고 했다. 그 후 로버트는 메일을 재개해 1개월에 1회 보내는 것을 결정했고, 지난 11월에는 컨퍼런스 콜을 진행했다. 


로버트의 재임 기간 동안 에르메스는 향수와 시계 등을 제외하고 도매 유통에서 거의 완전히 손을 떼고, 오프라인 및 전자 상거래의 버티컬 리테일(Vertical Retail, 공급망의 모든 단계를 통제해 중간상 또는 도매상 없이 제품을 디자인, 생산, 판매하는 방식) 범위를 확장해나갔다. 그의 지휘 아래 미주 지역의 오프라인 매장은 14개에서 29로 늘어났고, 새로운 매장의 위치를 선정할 때 로버트는 자신의 직감을 주로 믿는다고 했다. 그는 2007년 뉴욕 맨해튼 중심가가 911 사태에서 회복중일 당시, 월스트리트 매장을 오픈한 것 등의 움직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는 “내가 사랑하는 로어 맨해튼과 도시에 대한 확신의 증거”라고 말하며, 지역 주민들 또한 동의한다.


다른 주목할 만한 소매업 움직임 중, 로버트는 팜 비치(Palm Beach) 매장을 워스 에비뉴(Worth Avenue)에서 로열 포인시아나(Royal Poinciana)로 이전했고, 작년엔 또 다른 맨해튼 매장을 미트패킹 지역에 열었다. 지난 2018년에는 스탠포드 쇼핑센터에 매장을 내며 팔로알토(PaloAlto) 지역으로도 확장했다. 2006년에 연 단 한 곳, 노스캐롤라이나 샬롯 매장만이 닫았다. 그 부티크는 정체기에 이르렀고, 10년 임대 기간이 끝나 종료했다. 



▲에르메스의 미트패킹 지역 매장. / Andrew Morales/WWD

 

오프라인 매장에 대한 다음 움직임은 오는 2022년 오픈 예정이며 악셀 뒤마가 ‘나와 로버트의 다음 모험’이라 표현한 ‘706 매디슨 애비뉴’의 대형 플래그십이다. 로버트는 현 상황에도 45,000 평방피트 규모의 계획에 대해 후회가 없고, 개장은 연기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한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신규 매장은 매디슨 애비뉴의 두 곳보다 훨씬 더 넓은 공간으로, 고객들에게 더욱 향상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매우 흥분된다”고 전했다. 

 

매장 계획은 변함없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여행 중단은, 지역 고객 만족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인지시켰다. 로버트는 이 사태가 911 때와 유사하다며, “현재 방문 고객이 많지 않아 우리는 더욱 지역 고객을 만족시킬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특히 라틴 아메리칸 고객들은 통상 여행 중 쇼핑을 즐겼지만, 더 이상 선택지가 없는 현 상황에서 그들이 에르메스의 히트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방문하고 있으며, 이때 브랜드와 고객 간의 관계를 더욱 깊이 가져갈 가능성을 연구중이다. 로버트는 “이제 이러한 고객들과 관계를 만들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로버트는 다른 지역에서도 긍정적인 모습들을 목격하고 있다. 그가 읽었던 ‘2년 분량의 디지털 발전이 2개월 만에 이루어졌다’는 인용구가 다시 언급된 순간이다. “팬데믹은 우리 비즈니스의 디지털 필수 요소를 가속화시켰다. 하룻밤 사이 많은 발전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사실 에르메스의 디지털 강화는 팬데믹 이전부터 주요 과업 중 최우선이었다. 로버트는 말하길, 에르메스의 숭고한 헤리티지와 공예 예술을 꾸준히 강조해온 것이 악셀 뒤마의 공이라고 했다. “그를 통해 성숙한 가족 경영에 대해 배우고 의미있는 것을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로버트 차베스와 악셀 뒤마. / Courtesy of Hermès

 

또 로버트는 유명 럭셔리 브랜드 중 에르메스의 위치를 감안할 때, 브랜드 고객층 밖의 소비자들은 “아마 우리 매장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약간의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온라인 쇼핑은 편안하게 느낀다. 팬데믹으로 인해 더 늘어났고, 우리의 공식 사이트 트래픽이 늘어난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단골 고객은 매장 내 경험이 제공하는 개인 서비스를 여전히 원한다. 로버트는 “나는 우리가 양쪽에서 이익을 얻는 좋은 위치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온라인 경험을 할 것이고, 일단 그들이 편하게 느끼면 ‘지금까진 내게 아주 좋은 경험이었으니, 매장으로 향할 것 같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어떤 것이 잘 판매되는지 이야기하자면, 홈 제품들이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다. 많은 사람에게 몇 달간의 락다운은 홈 데코에 대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외에도 파인 주얼리와 슈즈, 그리고 최근 론칭한 뷰티 제품들도 좋은 판매율을 보이고 있다. 

 


▲에르메스의 홈 제품들. / Audrey Corregan/Courtesy of Hermès

 

백 의 경우, 켈리가 버킨을 제치고 가장 높은 수요를 보인다고 로버트는 말한다. “환상적인 투자다. 그 시대의 우아함과 클래식의 상징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를 연상시키는 켈리 백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단 하나의 백을 산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이라고 강조한다. 레디 투 웨어 제품들에 대해 그는 2014년 브랜드에 합류한 디자이너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Nadège Vanhee-Cybulski)가, “ 고객들의 요구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레디 투 웨어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카테고리가 되었다”고 전했다. 

 

로버트의 긍정적인 성향은 타고난 동시에 후천적이기도 하다. 그는 에르메스 경력 초창기, 911 사태로 혼란과 황폐함을 느꼈지만 여러 재난과 난관을 헤쳐왔다. 그에게 영감과 실용적인 조언은 장 루이 뒤마와의 전화 통화에서 왔다. 그는 로버트에게 “에르메스는 1837년부터 존재해왔다. 우리는 세계대전을 지나 수많은 파괴적인 경험을 겪어왔다. 우리는 이번 일 또한 잘 헤쳐나갈 것이다. 그저 우리가 당신을 지원하기 위해 여기에 있고 함께 헤쳐나갈 사실만 알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으며, 이는 로버트에게 강하게 울려 퍼졌다. 이를 통해 지난 한 해 이상하고 무서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완벽한 ‘지도와 지혜’를 발견했다. 

 


▲에르메스의 파인 주얼리. / Courtesy of Hermès

 

로버트의 에르메스로의 여정은 샌안토니오에서 ‘Wrong side of the track(사회 내 저소득 계층 거주지)’이라는 속담에서 시작되었다. 히스패닉 아버지와 스페인계 독일인 어머니 사이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난 로버트는, 아주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스페인어를 못하면 이 도시의 절반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고 강하게 충고하며, 그가 2개 국어를 구사하며 자라게 했다. 누군가는 로버트의 헤리티지와 유창한 스페인어가 그가 에르메스 라틴 아메리카 사업을 총괄한 것에 대해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이러한 점들을 중시하지 않는다. “벅차지 않다. 물론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손해가 되지는 않지만, 사업적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로버트의 업적엔 그가 젊은 시절 배웠던 교훈이 많이 담겨 있다. 그는 10대 때 샌안토니오의 하이 패션 리테일러 ’프로스트 브라더스(Frost Brothers)’ 백화점 진열장에 흥미를 느꼈다. 동시에 그는 군의 효율성에 이끌려 ROTC에 지원, 규율과 조직에 대해 배웠다. 


어쩌면 어린 시절 스페인어를 강조한 어머니의 말 때문에 그는 교수가 되기 위해 공부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는 프린스턴에서 로망스(Romance languages)를 공부했으나, 4년간의 강도 높은 교육과 일이 그를 지치게 했다. 그는 대학원 진학 전 휴식을 갈망했고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블루밍데일은 학생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곳 중 하나였고, 로버트는 경영 교육 프로그램 자리를 제의받았다. 월급은 9천5백 달러였다. 


블루밍데일에서 로버트는 광범위한 소매 교육을 받았고, 필수 작업의 많은 부분이 고위 경영진 밖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일찍부터 인식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일주일에 한 시간씩 리테일 수업을 듣고, 나머지 59시간을 창고 또는 판매 매장에서 일한다고 설명하며 자신이 해당 프로그램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전했다. 수습생들은 부서를 오가며 바쁘게 움직였고, 로버트는 일찍이 남성복과 컨템퍼러리 스포츠웨어 부서에서 일했다. 그의 세 번째 과제는 상당히 아방가르드하고 엣지있는 화장품 부서였다. 가히 운명적이라 할 수 있었으나 그는 벗어나려 노력했고, 진로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디자이너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의 에르메스 2020 가을 룩 중. / Giovanni Giannoni/WWD

 

ROTC와 마찬가지로 블루밍데일의 코스메틱 분야 또한 디테일에 대한 극도의 주의를 요했다. “그들은 내게 소매 분야의 규율, 즉 재고와 주문, 그리고 기회에 대해 가르쳤고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 업무는 그에게 소매 업계 거물이자 블루밍데일의 부사장이며, 뷰티 사업을 주도한 마이크 블루멘필드(Mike Blumenfeld)를 소개받게 하였다. 마이크는 얼마 뒤 로버트에게 바이어 어시스턴트 직을 제안, 로버트의 주요 거래처는 에스티로더와 크리니크, 엘리자베스 아덴, 그리고 헬레나 루빈스타인이었다. 

 

로버트는 1992년 회사가 파산 신청을 할 때까지 메이시스에서 6년간 근무했고 이후 에띠엔느 아이그너(Etienne Aigner)로 떠났으며, 프레드릭 페카이(Frédéric Fekkai)에서도 일했다. 그가 프레드릭 페카이에서 2개월 째 근무하던 중, 헤드헌터를 통해 에르메스에서 연락이 왔다. 

 

블루밍데일에서의 럭셔리 경험이 다였던 그도 에르메스의 장 루이 뒤마를 만날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인터뷰 시작에 앞서 장은 로버트의 아르마니 슈트를 칭찬했고, 두 남자는 스페인의 역사와 음식, 텍사스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대화했다. 또 그들은 장이 리테일 감각을 위해 자신의 아버지가 미국으로 보냈던 당시 알게된 ‘마이크’를 교집합으로 아는 점도 발견했다. 그렇게 로버트는 미국 패션계의 가장 유서깊은 럭셔리 브랜드에서 정상의 자리로 올랐다. 

 

로버트가 회사 문화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대형 소매업의 기업 활동에 익숙한 그는, 지극히 ‘파리 감성’으로 운영되는 패밀리 비즈니스에 진입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배송 지연부터 세일이 없는 시즌 등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관행에 직면했다. 로버트는 여러 번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고 묻는 자신을 발견했다. 시간이 흐른 후 그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오늘날 로버트는 전통과 역사가 21세기의 에르메스를 이끄는 기준이라 말한다. “사람들은 품질과 장인 정신,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성’을 원한다. 에르메스가 대표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진실성”이라고 말한다. 그는 회사가 디지털에 손을 대더라도 기술의 주체와 장인정신 등은 대체불가능인 점을 확실히 강조한다. 

 

산업 전반의 다른 이들처럼 로버트는 팬데믹이 모든 산업 유형과 소비자에게 심각한 자기 성찰을 강요했고, 이 과정이 장기적으로 에르메스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로버트는 “나는 진정성이라는 메시지가 이전보다 훨씬 더 크고 명확하게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피에르 알렉시(Pierre Alexis) 산하에서 이것은 새로움과 신선함, 새로운 재료와 색상, 그리고 뷰티와 같은 신규 카테고리가 에르메스를 현대적이면서도 매우 진실되고 오래도록 지속시키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론칭한 에르메스 뷰티 제품들. / Courtesy of Hermès

 

물론 정점에 있는 정통의 럭셔리는 그저 기본적인 기대치의 일부이다. 서비스는 특히 오프라인 매장에서 똑같이 중요한 것이다. 여기에는 제품 지식과 고객 관리 프로토콜 등 학습된 기술과 단면적인 서비스가 필요하다. 로버트는 “나는 항상 사람들이 행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에르메스에 대한 모든 지식과 판매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지만 웃는 법은 가르쳐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해도, 회사는 웃음을 유발하는 노력 정도 할 순 있다. 바로, 근로자들이 ‘워라벨’을 추구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팬데믹이 분위기를 변화시켰어도 이것은 종종 어려운 일이다. 로버트의 남편 빈센트 사비오(Vincent Sabio)는 그들이 지난 40년을 합친 것보다 9개월 동안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한다. 연극과 여행 등의 즐거움은 당분간 보류되겠지만, 이 커플은 혼자든 둘이든, 집에서 하는 ‘아름답고 멋지고 조용한’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다. 

 

10년 전 코네티컷주 샤론에서 진행된 그들의 결혼식에 대한 질문에 로버트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또 내가 평생 지구상의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이 말을 하고 서로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경이로운 순간”이라고 전했다. 

 

로버트의 또 다른 사랑은 뉴욕이다. 일부 기업의 거물들이 뉴욕으로부터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힌 것과 달리, 로버트는 수년 전 버스 창문을 통해 사랑에 빠진 이 도시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그와 빈센트는 배터리 파크 시티(Battery Park City)에서 살며, 맨해튼을 버리겠다는 생각을 결코 안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그는 “자유의 여신상과 뉴욕항을 마주 보는 허드슨강 전망이 주는 기쁨을 되새긴다. 마법과도 같다”고 말한다. 

 

‘에르메스에 기여한 가장 영향력있는 것이 뭔가?’에 대한 질문에 로버트는, 리테일러 확대를 주장하거나 북미 매출을 늘린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현실에 기반을 둔다”고 단호히 답한 그는, “이게 바로 내가 에르메스에게 가져다준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만약 에르메스에서 일한다면 당신은 구름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부유한 고객들과 아름다운 상품 및 매장들 등 모든 것이 훌륭하다. 하지만 에르메스는 이것들이 전부는 아니다. 나에게 에르메스는 항상 사람에 대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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